부안 들녘 위에 숨은 삼국시대 산성, 백산성 고즈넉한 역사 산책기

이른 봄날의 부안은 아직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백산면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얕은 안개가 걸려 있었고, 그 속에서 낮은 구릉이 부드럽게 드러났습니다. 길의 끝자락, 밭 사이로 돌담의 흔적이 이어지더니 어느새 작은 언덕 전체를 감싸는 성벽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백산성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돌들이 일정하지 않은 크기로 쌓여 있었고, 곳곳에 이끼가 낀 흔적이 보였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돌의 표면이 거칠고 단단했습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풀잎이 흔들리며 낮은 울음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도록 닿지 않은 듯 조용했지만, 오히려 그 정적 속에서 과거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1. 들길을 따라 마주한 산성의 첫 인상

 

부안읍에서 차량으로 약 15분 정도 달리면 백산면 백산리 입구에 ‘백산성 유적’이라는 표석이 보입니다. 도로 옆으로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안내판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됩니다. 길가에는 작은 냇물이 흐르고, 물소리가 은근히 배경음처럼 이어집니다. 산성 입구에는 옛 성문터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로 낮은 돌계단이 이어집니다.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백산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이른 아침에는 햇빛이 아직 낮아 성벽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오후에는 석축의 색이 붉게 물듭니다. 접근이 어렵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성벽의 선을 따라 올라가기 좋았습니다.

 

 

2. 백산성의 구조와 남아 있는 흔적

 

백산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한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 약 1.4km에 이르는 석축이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집니다. 성벽은 크기가 다른 돌을 거칠게 다듬어 맞물리게 쌓은 형태이며, 상단부에는 일부 붕괴된 구간이 있지만 전체 윤곽은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곳곳에 치(雉)와 보루로 추정되는 돌무더기가 보이며, 성 내부에는 평탄한 터가 여러 곳 남아 있어 건물이 있었던 흔적을 짐작하게 합니다. 돌 사이에는 작은 들꽃이 자라나 있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했습니다. 성벽 가까이 다가가면 돌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어 냉기를 품은 소리를 냅니다. 군사 방어시설이었던 공간이 이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조용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3. 역사 속 백산성의 의미

 

백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조선 중기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는 방어선으로, 지역 주민이 함께 수축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성이 위치한 백산 일대는 부안 평야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 당시 군사적 감시와 방호의 역할을 겸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부안 지역 관군이 이곳에 주둔하며 군량을 보관했다고 전해집니다. 역사적 기록 속에서는 수많은 전투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남은 돌 하나하나가 그 시절의 긴장감을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부안 지역의 방어체계와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증언하는 장소였습니다.

 

 

4. 자연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

 

산성 주변은 숲이 울창하지 않아 시야가 넓게 열려 있습니다. 나무 사이로 부안 들녘과 멀리 서해의 윤곽까지 보입니다. 봄에는 진달래가 성벽 아래를 따라 피어나고, 여름에는 잡초가 성벽을 덮으며 초록빛 풍경을 만듭니다. 가을에는 억새가 흔들리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돌벽 사이로 낮은 휘파람 소리가 납니다. 탐방로에는 안내 표지판과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걷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상부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도시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아, 자연과 역사가 한데 섞인 조용한 휴식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부안의 유산들

 

백산성을 관람한 뒤에는 인근의 부안읍성지나 내소사, 청자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특히 부안읍성지는 성곽 구조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백산성과 비교해보기에 흥미롭습니다.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내소사에서는 고즈넉한 전통 건축과 숲길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백산면 주변에는 부안의 대표 특산물인 곰소염전이 있어, 서해의 풍경을 함께 감상하기 좋습니다. 백산성 탐방 후 들판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 보이는 성의 윤곽이 햇빛에 따라 점점 흐릿해집니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6. 관람 시 유의할 점과 작은 팁

 

백산성은 입장료 없이 상시 개방되어 있지만, 탐방로가 흙길이 많아 비 온 뒤에는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운동화나 등산화를 착용하면 안전합니다. 여름에는 벌레가 많으므로 긴 옷과 물을 챙기면 좋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차니 따뜻한 옷차림이 필요합니다. 해질 무렵에는 성벽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이지만, 어두워지면 길이 좁아지므로 해가 지기 전 하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안내판에 간단한 지형도와 역사 요약이 있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이 고요한 유적의 분위기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마무리

 

백산성은 화려한 건축물도, 눈에 띄는 기념물도 없지만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긴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낡은 돌 사이로 역사의 숨결이 은근히 흘렀습니다. 성벽 위에 앉아 멀리 들판을 바라보니, 이곳이 과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기울며 성벽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때, 시간도 함께 멈춘 듯했습니다. 다음에는 봄의 새순이 돋을 때 다시 찾아, 초록빛 속의 성벽을 보고 싶습니다. 조용히 걸으며 과거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백산성은 가장 담백하고 깊은 역사 여행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구룡사 서울 서초구 양재동 절,사찰

태백산세류암 봉화 소천면 절,사찰

태백산국립공원망경사 태백 소도동 절,사찰